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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과 마눌님 일찌기 공명 제갈량이 조조의 백만대군을 앞에 두고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부르는 호풍호우의 재주로 적벽대전을 이끌었음은 어릴 때부터 읽었던 삼국지를 통해 알고는 있었다 제주도에 사진 찍으러 간다고 하니, 집사람이 "비가 오고 거센 바람이 불터이니 6월말은 아니되오 날을 다시 잡아 갔다 오시구랴" 하면서 은근히 말리는 기색이었다. '올 들어 가뭄이 창궐하니 비는 무슨 비, 더구나 마른 장마라고도 하고 지금껏 수차례 제주를 갔어도 비 한방울 구경 한 적 없고, 3박 4일 공치기도 탈없이 쳤노라' 큰소리 땅땅치면서 제주에 온 지 겨우 이튿날 성산일출봉을 헉헉대며 올라가다 보니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구름안개가 앞을 가려 사방은 온통 회색빛 세상이구나 가져간 최신 장비는 꺼낼 엄두도 못내고 오며가며 스마트폰으로 .. 2020. 7. 3.
서울의 색깔 대한민국 서울 한양도성 성문 안이기에 문안이라고 했던 서울 시내 한복판 청계천 북쪽에 있는 동네 팔판동 소격동 화동 송현동 안국동 가회동 중학동 지금은 북촌이라고 부르는 곳 山淸 水淸 人淸, 산과 물과 사람 세 가지가 맑아 삼청동 玉淸 上淸 太淸, 도교에서 신선이 살던 세 궁을 일컬어 삼청동 도교에서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초제라 했고 조선때 초제를 지내는 관청인 소격서가 있던 곳 소격동 ​ 조광조의 개혁 정치로 꼽히는 소격서 혁파! 아직도 교과서에서는 그런 것을 개혁이라고... 생각없는 학자들의 웃기는 짜장면같은 얘기다 팔 판서골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덟 명의 판서들이 살았다고 해서 이름지은 곳 팔판동 國泰民安 나라가 평화롭고 국민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국태민안의 염원이 가득하게 담겨진 동네 안국동 安國洞.. 2020. 7. 2.
커피 한 잔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 구려 불덩이 같은 이 가슴 엽차 한잔을 시켜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아 그대여 왜 안 오시나 아 사람아 오 오 기다려요 《커피 한 잔》 노래 펄 시스터즈 작사 신중현 작곡 신중현 차를 마시는 곳 茶房 다방과 찻집 그리고 cafe 카페 다방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1번 레지, 2번 반숙 계란, 3번 쌍화차....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어린 풍경은,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운 새까만 쌍화차였다. 70년대 대학가 앞에는 음악 다방이 있었다. DJ가 틀어주는 신청곡을 듣고 DJ가 읽어주는 신청자.. 2020. 6. 28.
다방 더운 여름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한 잔의 모카 라떼를 마시면 그 곳을 카페라 하지만 노란자가 동동 떠있는 추억의 쌍화차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면 우리는 그곳을 다방이라 부른다오 마치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듯 시계 초침까지도 더디게 흘러가는 곳 그 곳에서 말 그대로 다방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물끄러미 창밖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구랴 그때 요즘 진짜로 보기 힘든 나비 한 마리가 날라와 창가에 앉았지 어디서 왔을까 저 나비는 나를 보려고 이곳까지 왔을까 아니면 꽃잎이 예뻐서 여기에 놀러왔을까 바쁜 일도 없기에 그저 멍하니 나비가 사라진 창밖을 바라보았다우 퇴직해서 사무실 하나 장만했냐고? 그렇다우 이곳이 내 사무실이지 집에 핸드폰을 두고 와도 문제가 없지 여기 전화가 바로 내 전화이기도 하.. 2020. 6. 27.
망우리에서 樂而忘憂 낙이망우 즐거이 깨달음을 얻어 근심을 잊는다 망우(忘憂)라는 명칭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동구릉에 장지를 정하고 난 후 지금의 망우고개에서 "이제야 근심을 잊겠노라"고 하여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그 후 일제 때인 1933년 부터 1973년 까지 40년간 시립 공동묘지로, 서울사람들의 북망산이 되면서 이승에서의 고통일랑 모두 잊고 저승에서나마 편하게 지내라는 망우리가 되었다. 묘지가 폐장이 된지 5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망우리공원으로 불리운다.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우리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박물관이자, 삶과 죽음의 사이, 고인과 나 사이의 사잇길을 걸어가며 즐거이 깨달음을 얻어 근심을 잊는 인문학 공원이 되었다. 명지대 유홍준 교수는 “이제는 더없이 중요한 역사 공간이 된 망우리공원을.. 2020. 6. 23.
104마을 104 ! 산104 번지 노원구 중계본동 산104번지 우리는 그곳을 백사마을이라 부른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도 하지만 재개발이 확정되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 머지않아 그곳도 역사 속의 동네로 사라질 것이다 산101번지, 서대문구 현저동 산101번지 큰집이라 부르던 곳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크게 악명을 떨쳤던 서대문구치소, 서대문형무소 지금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라 부르는 곳이다 588 ?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가보지는 않았어도 어떤 곳인지 아는 곳이다 사는 동네에 따라 다르게 얘기하기도 한다 588번 버스? 화곡동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지금도 588이라고 하면 신길운수 신월동 종점을 588종점이라고 한다. ​ 잠실에서 조금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잠실나루역? 보다는 성내역이라 말.. 2020. 6. 22.
경희궁의 아침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아니다, 정문이었다. 지금은 복원된 경희궁 구석진 모퉁이에 찌그러져 있는데 갈 때 마다 문앞에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까닭에 아마 강북삼성병원 등 주변의 사람들은 궁궐의 정문이 아닌 주차장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는 1910년 경희궁을 헐고 경성중학교 (서울 중고등학교)를 건립하였다. 이때만 해도 흥화문은 남아 있었으나 1932년 박문사에 이전되어 정문이 되었다. 박문사(博文寺)는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伊藤博文)를 기리기 위해 남산 자락에 세운 사당이었다. 그 후 그 자리는 나라손님을 맞이하는 영빈관이 되었다가 신라호텔로 바뀌고 호텔 정문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흥화문이 경희궁 복원사업으로 돌아왔다. .. 2020. 6. 18.
창신동 봉제마을 그곳에 가면 추억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귀를 쫑긋하게 되고 눈을 다시 한 번 크게 뜨고 보게된다​ 창신동이 그렇다 그렇다고 창신동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연건동에서 이화동을 지나 동숭동 산비탈길을 올라가면 저 산 너머에, 낙산 너머에 있다고 들었던 동네였기에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옆 동네의 효제나 혜화국민학교와 비교하여 한 학년이 6개반 밖에 없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창경국민학교 그런 우리학교도 한 반에 80명이 넘었다. 6학년때 우리반은 82번까지 있었으니.... 우리학교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창신국민학교는 1969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국민학교로 유명했었다. ​ 학생수가 자그마치 1만 204명, 학급수는 129개로 한 학년이 20반이 넘었고 고학년까지도 2부제 수업을 해야.. 2020.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