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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32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옛 말, 어리석은 사람 한 명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까지 망신시킨다는 뜻인데 어릴 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이해가 안되는 속담이다 왜? 꼴뚜기가 어때서!꼴뚜기는 서해와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데 오징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가 훨씬 작은 6~7센티미터밖에 안 되어서 꼴뚜기 조림이나 꼴뚜기 젓갈로 만들어 먹을게 마땅치 않을 때 밑반찬으로 먹거나 싸줄게 변변치 않을 때 도시락 반찬에 들어갔다생김새가 볼품없어서 별 볼일 없고 가치가 낮은 것에 비유해서 말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 조림으로 먹고 젓갈로도 즐겨 먹으면서도, 오징어 보다 훨씬 자주 먹으면서도 오징어 보다 싸다고 오징어 보다 못생겼다고 그런 구박을 하다니? ​ 아쉬울 때는 요긴하게 써 먹다가 배가 부르면 가차없이 버리고 조.. 2021. 5. 1.
선유도 선유도공원은 수돗물을 공급하던 선유정수장 시설을 재활용한 생태공원이다붉게 녹슨 파이프 위로 떨어지는 물, 지붕까지 넝쿨이 자란 저장 탱크, 연꽃이 핀 낡은 수조…. 서울 선유도공원에는 곳곳에 지난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다가 2000년 12월 폐쇄한 뒤 기존 시설을 재활용한 생태공원으로 만들었다수돗물 정수장에 설치되어 있던 녹슬은 파이프라인이나 낡은 도수로를 놀이공간이나 습지의 형태로 꾸몄다또한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해 만들었다말그대로 폐쇄한 정수장 시설을 그대로 이용한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으로 지난 2002년 4월 26일 문을 열었다공원은 물을 주제로 하여 정수지와 .. 2021. 4. 18.
호림박물관 고고미술사학계의 최순우 · 황수영 · 진홍섭은 잡지 [고고미술]에 이렇게 호소했다 .... 유물 수집은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돈 많은 재산가들의 소일거리도 아니지요 ​ 수집가에게는 좋은 유물을 볼 수 있는 안목과 배짱,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감 없이는 좋은 수집가가 될 수 없어요...개성공립상업학교 재학 시절 개성박물관장을 지낸 고유섭의 특강을 듣고 문화재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던 湖林 호림 윤장섭은 개성 3인방의 호소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느꼈다 윤장섭은 1957년 성보실업을 시작으로 유화증권과 서울농약(현 성보화학)을 세운 경영인이지만 문화재 1만5,000여점을 사들인 수집가로 더 유명하다호림 윤장섭은 1971년 고미술 중개상인으로부터 를 구매하면서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고,고고미술사.. 2021. 4. 5.
모이지말라니까 코로나19로 설날 명절의 풍경이 바뀌었다 정부가 5인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집에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형제와 자매,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여러 손자들이 모두 모여서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며 북적이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제자 이상적에 세한도를 그려준 추사 김정희는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이나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헌종 말년에 귀양이 풀려 돌아왔으나 1851년 친구 영의정 권돈인 사건에 연루되어 또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풀려 돌아왔다김정희는 귀양살이에서 서울로 돌아온 1852년부터 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과천 청계산 자락에 있는 과지초당과 봉은사를 오가며 생애의 마지막을 보냈다봉은사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추사가 만.. 2021. 3. 6.
삼일절 己未年 三月 一日 正午, ​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 / 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3.1운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3.1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3.1운동은 우리 민족운동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라고 이은상 선생이 쓴 국어 교과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 3.1운동은 일제 강압에 저항하여 자주된 독립국가을 찾고자 우리 모두가 처음으로 일어난 거족적인 민족운동이라는 점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성리학적 질서를 고수하며 근대적 개혁에 반대하는 척사위정계열과 ​ 이들과 대조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수용하여 우.. 2021. 3. 1.
소쇄원에 가보니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을 갔다 푸른 대나무숲이 가득한 그곳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 있는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원림으로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 양산보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폭포가 되어 연못에 떨어지고, 계곡 가까이에는 제월당과 광풍각이 들어서 있다 ​ 이곳은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하다 ​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5대손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2021. 2. 15.
흥화문 옛 지명에 《야주개》라 불린 동네가 있다 경희궁은 일명 《야주개 대궐 夜照峴 大闕》로 불렸는데, 그것은 정문인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었고, 글씨의 광채가 밤에도 훤히 비추었다고 해서 이 일대를 야주개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 지금의 새문안교회와 구세군회관 주변이 바로 거기다興化門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이다 남쪽을 향한 경복궁의 광화문과는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오른쪽에 개양문(開陽門), 서쪽에 숭의문(崇義門), 북쪽에 무덕문(武德門)이 있었다 광해군이 경희궁을 창건할 때 궁성의 동쪽에 동향으로 배치하였다 또한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홍화문 등 궁궐 정문이 2층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흥화문은 1층으로 지어졌다경희궁? 경.. 2021. 2. 10.
서대문 내 얘기에 반발하는 이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신문이라고 하면 바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다 공교롭게도 두 신문사 건물이 모두 광화문 사거리에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 동네를 신문로라 부른다신문로1가와 신문로2가를 한자로 어떻게 쓸까 조선과 동아가 있고 서울신문도 경향신문도 있는 거리이기에 신문 newspaper 新聞 당연하게도 新聞路 라고 쓰지 않을까?newspaper 신문은 한자로 新問도 아니고 新門이 아니며 新文도 아닌 新聞임에도 신문로는 新門路라 쓴다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사거리에 이르는 길 오늘 우리는 그 길을 새문안로 새문안길이라 부르며 그 길을 가다보면 유명한 교회가 서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 새문안교회 새문안예배당이 있다최근 교회를 새로 지어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새문안교회는.. 2021.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