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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경희궁의 아침

by 창밖의 남자 2020. 6. 18.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아니다, 
정문이었다.

지금은
복원된 경희궁 구석진 모퉁이에 찌그러져 있는데
갈 때 마다 문앞에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까닭에
아마 강북삼성병원 등 주변의 사람들은
궁궐의 정문이 아닌 주차장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는 1910년 경희궁을 헐고
경성중학교 (서울 중고등학교)를 건립하였다.
이때만 해도 흥화문은  남아 있었으나 
1932년 박문사에 이전되어 정문이 되었다.

박문사(博文寺)는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伊藤博文)를 기리기 위해
남산 자락에 세운 사당이었다.

그 후 그 자리는
나라손님을 맞이하는 영빈관이 되었다가 
신라호텔로 바뀌고 호텔 정문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흥화문이 경희궁 복원사업으로 돌아왔다.
오기는 왔는데
버젓하게 자기가 있던 자리로 오지 못했다.
흥화문은
지금의 구세군빌딩 어름쯤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밀리고밀리며 원래 있던 곳이 아닌
지금의  모퉁이에 쳐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무슨 복원사업인지....

고층빌딩이 즐비한 땅값 비싼 새문안길이기에
예산상의 문제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더라도,
이해 못할 일은 너무 많다.

서울시는 경희궁을 복원하면서 동시에
경희궁터,
그것도 궁 정문 흥화문에서 금천교를 건너
궁 앞 자리에 
서울역사박물관을 세웠다.

서울의 역사, 한양의 역사, 조선의 역사를 말하면서
경희궁 터에
정작 궁궐이 없고
정문 흥화문도 멀리 밀어내 버리고
조립식 건물같은 허접한 박물관을 세우다니......



경희궁(慶喜宮)은
숙종 경종이 태어난 곳이며
숙종 영조 순조 그리고
인헌왕후 인선왕후 인경왕후 선의왕후께서
승하하신 곳이며
경종 정조 헌종이 즉위한 곳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보듯이, 
경희궁은
조선 후기 정치사의 중심 무대로서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어느 궁궐에도 뒤지지 않는
비중과 중요성을 간직한 궁궐이었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 부르고
그와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서궐이라 일컬으면서,
인조 이후 역대 왕들이
당시의 법궁인 창덕궁과 이곳을 번갈아 오가며
정무를 보고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더불어
서울의 5대 궁궐로 꼽히던 경희궁.
이제는 궁궐도 아닌 제사의 공간 종묘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모두에게 잊혀지고
사라진  궁궐이 되어버렸다.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아파트로 환생된 것일까????



흥화문을 지나
복원된 경희궁을 들어가 보았다.

어라??? 
여기가 궁인가 ???
시멘트로 포장된 길.
복원했다는 궁궐의 마당이,
낡아빠진 시커먼 시멘트 투성이라니....




공원도 이러지는 않을터이다.
요즘 깔끔하고 세련되고
나무 많고 예쁜 꽃 가득한  공원도 많다.

이곳은 뭐하는 곳인지.....
공사장 바리케이트나 보이는 곳.
복원한 경희궁이다.
방치한 경희궁이다.



정전
궁궐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전각으로
왕이 즉위식을 하고
신하들의 조하를 받으며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등
국가 중요한 각종 의식이 열리는 곳이 정전이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등이 바로  궁궐의 정전이며,

경희궁에서는 숭정전이 정전이다.
궁궐의 상징인 정전,
그 숭전전에  잡초가 가득하다.

오래된 폐가도 아니고
새로 복원했다는 궁궐의 대표 전각
정전, 월대 위에 가득히 핀 잡초.
이런 참담함이.....
이럴려고 복원했나?



서울시에서는 궁궐을 복원했다고 홍보하지만
막상 직접 가서 보니
극히 일부만 복원했을 뿐더러 
그나마 새로 건축된 전각들은
어딘가 어색하고, 위엄이 없고,
건물간의 조화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인다.

많이 본 듯
여기가 어디일까 하고 생각해 보니  바로,
드라마 세트장이었다.
그것도 어설픈 세트장.
조선 후기 국가 중흥을 꾀했던
숙종, 영조, 정조의 크나큰 흔적이
어느 궁보다도 가장 많이 있었던 곳,
경희궁!


세트장이라면
차라리 유니버설 스튜디오 처럼
볼거리도 많고 흥미 가득한
멋진 역사물 세트장으로나 만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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