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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창신동 봉제마을

by 창밖의 남자 2020. 6. 17.


그곳에 가면
추억을 간직한 사람에게는
귀를 쫑긋하게 되고
눈을 다시 한 번 크게 뜨고 보게된다​
창신동이 그렇다




그렇다고 창신동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연건동에서
이화동을 지나 동숭동 산비탈길을 올라가면
저 산 너머에,
낙산 너머에 있다고 들었던 동네였기에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옆 동네의 효제나 혜화국민학교와 비교하여
한 학년이 6개반 밖에 없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창경국민학교
그런 우리학교도 한 반에 80명이 넘었다.
6학년때 우리반은 82번까지 있었으니....

우리학교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창신국민학교는 1969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국민학교로 유명했었다.

학생수가 자그마치 1만 204명,
학급수는 129개로 한 학년이 20반이 넘었고
고학년까지도 2부제 수업을 해야 했다.
만 명이 넘는 초등학교!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대규모다.



그랬던 그곳이 바로 옆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대표 의류시장인
동대문종합시장을 뒷받침하면서
의류 봉제산업을 이끌어가는 곳으로 바뀌었다




한일합섬이나 코오롱 같은 큰 공장도 아닌
골목에서 기껏 옷 하나 만들어 파는데
뭐가 그리 사람이 많이 필요하고 복잡할까?

공장에서 원단 받아다가 가위로 대충 자르고
재봉틀로 드르륵하고 박으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입는 옷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를 비롯하여 패턴사 재단사 미싱사....
알 수 없는 직종이 가득한데
그만큼 작업 공정이 엄청 나뉘어졌다는 얘기인데
거기에는 이른바 시다도 꼭 있어야 한다




창신동 봉제거리를 가면 누구나 놀라게 되는
첫 인상은
가파른 비탈에 구석구석 뻗어있는 좁다란 골목
그 골목골목마다 오토바이가 무지무지하게 많고
여기저기에서 부릉부릉 쉴새없이 지나간다는
별천지 골목이라는 것이다


 


왜 이리도 오토바이가 많을까
많이 싣지도 않고 기껏 원단 한두 덩어리
차로 다니면 더 많이 실을텐데?

그렇다면 그게 바로 탁상행정!
와서 보고 와서 들어보아야 안다
왜 저리도 오토바이 퀵이 많은지




창신동엔 봉제공장들이 얼마나 있을까?
인근 부동산에 물어봐도 “잘 모른다”는 한마디.

골목골목에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지만
그 집들이
살림집인지 공장인지는 쉽게 알 수가 없다.




더러는 방 하나에 공장 하나가 있을 정도로 창신동의 공장 수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고 하는데

봉제역사관의 해설사분이 말하길,
예전에는 3천여개나 되는 공장들이 있었는데
경기탓인지 경제탓인지
요즘에는 천여개 정도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어디를 가나 어렵다는 얘기만 가득하다




동대문은 동대문만의 장점과 저력이 있다.
창신동은
동대문종합시장이 가지고 있는 장점중의 하나다.

이곳을 어떻게 할까?
바로 우리의 능력을 잴 수있는 우리의 일이다.




골목길을 정비하고 예쁘게 단장도 하고
이런 저런 기념관을 세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동대문을 으뜸가는 의류시장으로 키우려는
지속적이고도 일관성 있는
탄탄한 뒷받침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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