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와 생활

망우리에서

by 창밖의 남자 2020. 6. 23.


樂而忘憂 낙이망우
즐거이 깨달음을 얻어 근심을 잊는다

망우(忘憂)라는 명칭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동구릉에 장지를 정하고 난 후
지금의 망우고개에서
"이제야 근심을 잊겠노라"고 하여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그 후 일제 때인 1933년 부터 1973년 까지
40년간 시립 공동묘지로, 
서울사람들의 북망산이 되면서
이승에서의 고통일랑 모두 잊고
저승에서나마 편하게 지내라는
망우리가 되었다.

묘지가 폐장이 된지 5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망우리공원으로 불리운다.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우리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박물관이자,
삶과 죽음의 사이,
고인과 나 사이의 사잇길을 걸어가며 
즐거이 깨달음을 얻어 근심을 잊는
인문학 공원이 되었다.

호암 문일평



명지대 유홍준 교수는
“이제는 더없이 중요한 역사 공간이 된 망우리공원을
우리는 하나의 문화재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청순한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 망우리공원을 거닐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아들임을 떠올리며 멀리 한강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몇 차례 학생들과
여기를 답사 다녀왔고,
또 어느 해 봄엔 여기를 찾아갈 것이다” 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는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정치인 조봉암, 서화가 오세창, 사학자 문일평 등
외에도
조선 순조의 큰딸인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
시인 박인환, 가수 차중락,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지만 친일행각으로
이제는 이름조차 생소한 박희도 등
수많은 선열과 조상들이 잠들어 있어
한편의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곳이기도 했다.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도입한
총독부 초대 산림과장 사이토 오토사쿠라는 일본인도 잠들어 있어
이념적으로는 친일파와 좌파까지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이곳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고
친일파도 반일파도 없었다.
모두가 한 자리 한 땅에 묻혀서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의 흙을 이루고 있었다.


명온공주



망우리공원의 고인들은 모두
개화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그리고
빈곤 속의 생존경쟁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다.
한민족 역사상 이보다 더한 아쉬움과 치욕,
그리고
고난의 시기가 언제 또 있었던가.

그 격동의 근현대사가 여기 이곳에
액자처럼 오롯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시기가 그러했기에 그들 대부분은
각 분야의 최초요 당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우리 근현대사의 선구자들이었다.
국립묘지와는 달리
이곳 시민의 공동묘지에는
좌익과 우익,
독립지사와 친일파가 한 데 모여 있고
직업도 다양하며 외국인도 있고
무명의 서민도 있다.
유명인의 비석은 물론이요
무명의 서민이 남긴 비석에도
절절한 근현대사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이곳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묘지이며 추모공원이다.




이제서야 근심을 잊고 편히 쉬겠노라고
붙여진 이름, 망우리공원.
그러나 차마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삶의 한이 너무나 많았던 시절,
누구에게도 망우리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방정환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찬찬히
이곳의 역사적 자취를 돌보고 가꿀 때가 왔다. 고난의 시기에 잃어버렸던 
‘망우’의 참뜻이
다양한 죽음을 모두 받아들이며 다시 살아났다.




이중섭은
병원에서 죽은 후
무연고자로 처리돼 방치되어 있다가 사흘 만에 고향 친구 김병기 화가에게 발견됐다.
유해는 서울 홍제동 화장장에서 화장돼
반은 망우리묘지에 묻히고,
반은 일본의 가족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처가인 야마모토가(山本家)의 묘에 합장됐다.

그의 망우리 무덤 앞 상석은
먼 훗날에 세워진 것으로
오른 편에 아들 태현과 태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망 1년 후
친구 한묵이 ‘대향이중섭화백묘비’라고 쓰고
후배 차근호가 아이들 모습의 조각을 세웠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 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목마와 숙녀, 박인환


樂而忘憂 낙이망우
이승과 저승이 더불어 사는 사잇길이다.




'문화와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갈공명과 마눌님  (0) 2020.07.03
커피 한 잔  (0) 2020.06.28
원로가 보이는 극장  (0) 2020.06.15
성형외과 전성시대  (0) 2020.06.05
호림박물관에서  (0) 2020.05.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