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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히로부미2

나는 안중근이다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30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중국 하얼빈에서 이등박문 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20세기초 일어난 최대의 사건이었다당시 안중근 나이 31세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 ● 이등박문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 대한의군 참모중장 大韓義軍 參謀中將 신분과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민간인 개인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다 라고 분명히 밝혔다. ​안중근 의사?? 그는 민간인도 개인도 아니기에 의사라고 열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호칭이라 판단된다국가보훈처 정의를 따르면 의사(義士)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항거하다가 의롭게 죽은 사람으로 무력으로 싸우다 죽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며, 군인에게는 쓰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2020. 10. 23.
경희궁의 아침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아니다, 정문이었다. 지금은 복원된 경희궁 구석진 모퉁이에 찌그러져 있는데 갈 때 마다 문앞에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까닭에 아마 강북삼성병원 등 주변의 사람들은 궁궐의 정문이 아닌 주차장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는 1910년 경희궁을 헐고 경성중학교 (서울 중고등학교)를 건립하였다. 이때만 해도 흥화문은 남아 있었으나 1932년 박문사에 이전되어 정문이 되었다. 박문사(博文寺)는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伊藤博文)를 기리기 위해 남산 자락에 세운 사당이었다. 그 후 그 자리는 나라손님을 맞이하는 영빈관이 되었다가 신라호텔로 바뀌고 호텔 정문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흥화문이 경희궁 복원사업으로 돌아왔다. .. 2020.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