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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32

백인제 가옥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이라는 시가 있다.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이다. 우리들에게 그렇게 알려져 있고 그렇게 알리고 있다. 백인제가옥은 전통적인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근대적 변화를 수용하여, 건축 규.. 2020. 7. 23.
대장간 대장장이 대장간은 쇠를 달구어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옛날에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로 대장간이 있어 무딘 농기구나 기타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대장장이라고 한다. 대장장이를 영어로 blacksmith라고 한다. 철이나 금속으로 물건을 제작하는 기술자 smith에는 black smith와 white smith가 있었다. white smith는 가열을 하지 않고 철을 가공하는 직업으로 주로 양철이나 은 등을 가공하며 불에 달구지 않으므로 작업자가 지저분하지 않고 깨끗하다(white)는 의미로, 그리고 불에 달구고 물에 넣고 망치질 하고 땀범벅, 얼룩범벅이 되어 일하는 사람을 blacksmith라고 한 것이다. 그 이후에 생겨난 말이 go.. 2020. 7. 13.
경희궁의 아침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이다. 아니다, 정문이었다. 지금은 복원된 경희궁 구석진 모퉁이에 찌그러져 있는데 갈 때 마다 문앞에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까닭에 아마 강북삼성병원 등 주변의 사람들은 궁궐의 정문이 아닌 주차장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는 1910년 경희궁을 헐고 경성중학교 (서울 중고등학교)를 건립하였다. 이때만 해도 흥화문은 남아 있었으나 1932년 박문사에 이전되어 정문이 되었다. 박문사(博文寺)는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伊藤博文)를 기리기 위해 남산 자락에 세운 사당이었다. 그 후 그 자리는 나라손님을 맞이하는 영빈관이 되었다가 신라호텔로 바뀌고 호텔 정문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흥화문이 경희궁 복원사업으로 돌아왔다. .. 2020. 6. 18.
미수 허목 우리는 국사 교과서에서 역사를 배우고 고궁과 유적지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고 역사의 인물을 만난다 미수 허목 늦은 나이에 정계에 등장했지만 흰 수염을 휘날리며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지킨 학자 허목 지방관으로서 삼척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신 분 우리의 역사에서 다소 소홀하게 평가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분이다 眉 눈썹 미 叟 늙은이 수 눈을 덮을 정도로 눈썹이 길었기에 스스로 자신의 호를 미수라 이름지었다 오사모에 담홍색의 시복(時服)을 입고 서대(犀帶)를 착용한 좌안 7분면의 복부까지 오는 반신상이다. 영정의 오른 쪽에는 채제공이 당시에 쓴 표제가 붙어 있다. ​ 화폭 상부의 제발문에 따르면, 정조 18년(1.. 2020. 6. 3.
초파일 4월 8일 음력 사월 초파일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양력으로는 4월 30일이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때문에 한달을 늦춘 5월 30일에 봉축식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윤4월이기에 5월 30일도 4월 8일 윤달 사월 초파일이었다 누구에게는 황금 샌드위치 연휴이지만 우리집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누구에게는 놀러가는 공휴일이고 나에게는 부처님 만나러 절에 가는 날이다.올해 경자년은 서기 2020년, 불기로는 2564년, 단기로 따지면 4353년이다.[단기]는 단군기원(檀君紀元)의 약자로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해 B.C.2333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서기]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약자로서 예수께서 탄생하신 해를 원년으로 삼는 연호이기에, 우리가 기원전 00년이라 하면 서력 기원전을 의미한다. .. 2020. 6. 1.
여주 신륵사에서 전라남도 여수는 麗水로 쓰지만 경기도 여주는 驪州라 한다 보통 알고 있는 麗 고울 려, 아름다울 려가 아닌 흔히 쓰지 않는 驪 검은말 려 라는 한자를 쓴다 검은 말 Black horse 黑馬도 아닌 검은 말 驪 여주에는 어떤 역사가 있기에 이런 한자를 쓸까? 驪州와 驪江 여주 사람들은 신륵사 앞으로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를 驪江 여강이라 부른다. 여강은 강원도의 섬강과 점동면의 청미천이 남한강에 몸을 담그는 세 물머리(삼합리)부터 이포대교 아래 전북리에 이르기까지 100리 물길이다. 여강이라는 이름은 여주의 옛 이름인 黃驪 황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려시대의 문인이자 최고의 문장가로 동국이상국집의 저자 驪州 李氏 이규보 요즘식으로 하면 여주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고려식으로 하니 그의 본관이 바로 황려 黃驪.. 2020. 5. 31.
묘비명 말은 행실을 덮어주지 못하였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도다.​ 그저 요란하게 성현의 글 읽기만을 좋아했지만​ 자기 허물을 하나도 고치지 못했기에​ 돌에 새겨 뒷사람들이 경계 삼도록 하노라 言不掩其行 언불엄기행 말은 행실을 덮어주지 못하였고​ 行不踐其言 행부천기행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도다.​ 徒嘐嘐然說讀聖賢 도효효연설독성현 그저 요란하게 성현의 글 읽기만을 좋아했지만​ ​無一補其諐 무일보기건 자기 허물을 하나도 고치지 못했기에​ 書諸石以戒後之人 서제석이계후지인 돌에 새겨 뒷사람들이 경계 삼도록 하노라 ​ ...... 허목(許穆)의 묘비명 미수 허목은​ 조선조에서 누구보다 전서로 작품을 많이 했고, 진시황 이전인 선진시대의 고전을 다루었기 때문에 그의 전서는 미전(眉篆), 행초를 쓰는 법으로 전서를.. 2020. 5. 20.
남한산성에서 1636년 12월 16일부터 그 이듬해인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싸우자는 김상헌과 화친하자는 최명길의 팽팽한 대결을 그린 영화 남한산성 누구도 함락시킬 수 없는 하늘이 내린 요새라고 자랑한 남한산성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식량이 없었다. 눈 쌓인 겨울 산에는 머루도 달래도 없다. 굶으면서 며칠이나 싸울 수 있을까? 군사들은 이미 전투에 필요한 말까지 잡아먹었다. 조정대신들이 뜨겁지만 허황된 논쟁을 벌일 때 싸움을 담당하는 군사들은 하염없이 굶고 있었다. 원래의 비명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이다. 이조판서 이경석이 글을 짓고, 글씨는 오준, 비명(碑名)은 여이징(呂爾徵)이 썼다. 먹을 것이 없는데 무슨 싸움? 청나라는 밖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성을 포위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 2020.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