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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대장간 대장장이

by 창밖의 남자 2020. 7. 13.

 

 

대장간은
쇠를 달구어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옛날에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로 대장간이 있어
무딘 농기구나 기타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대장장이라고 한다.

 

 

대장장이를 영어로  blacksmith라고 한다.
철이나 금속으로 물건을 제작하는 기술자 smith에는
black smith와 white smith가 있었다.

white smith는
가열을 하지 않고 철을 가공하는 직업으로
주로 양철이나 은 등을 가공하며
불에 달구지 않으므로 작업자가 지저분하지 않고
깨끗하다(white)는 의미로,

그리고 불에 달구고 물에 넣고 망치질 하고
땀범벅, 얼룩범벅이 되어 일하는 사람을
blacksmith라고 한 것이다.

 

 

그 이후에 생겨난 말이
goldsmith 금장색 [金匠色]
금을 녹여 물건을 만들거나 새기는 등
공예 기술을 가진 자를 뜻하며

silversmith 은장색 [銀匠色]
은을 녹여 물건을 만들거나
은을 두들겨 펴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
‘은세공업자’를 뜻한다

 

 

신라의 제 4대왕 탈해 이사금 [脫解尼師今]
성은 석씨(昔氏)이며 이름은 탈해
석탈해 [昔脫解 ]는 자신이 
[숯과 숫돌을 사용하는 대장장이 집안]이라고
밝혔다.

그의 아버지는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왕,
용성국(龍城國)의 함달파왕(含達婆王), 또는
완하국(琓夏國)의 함달왕(含達王) 등이라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가 출생지를 떠나
신라에 온 이동경로는
북아시아의 기마민족 계통으로 보는 북방설,
또 다른 설은
그가 해양세력으로서
중국이나 일본 열도를 거쳐 왔다고 보는 남방설이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그의 출신지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용성국(龍城國)은 어디일까?

가야 김수로왕의 허 왕후와 마찬가지로
인도 남부 타밀지역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석탈해는 자신이
숯과 숫돌을 사용하는 대장장이 집안이라 밝혔는데

석탈해의 성인 석은
당시 타밀어로  ‘대장장이’를 뜻하는
[석갈린감 sokalingam]의 줄인 말로써
성과 집안 직업이 그대로 일치한다.

 

 

[석갈린감] [석]  [석가 soka] 등은
영어의  Blacksmith,  Goldsmith 처럼 
대장장이 집안의 이름으로 통용됐으며
지금도 타밀인의 남자 이름에 남아있다.

또한  [탈해 Talhe]는 
타밀어로  머리, 우두머리, 꼭대기를 의미하는
[탈에 Tale]나  [탈아이 Talai] 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석탈해 라는 이름은 
타밀어로 
[대장장이], [우두머리]를 가리켜
그가
바다 건너 한반도에 함께 들어온
대장장이 지도자임을 이름에서 암시하고 있다.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許黃玉)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이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공주라 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서기 48년 인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국의 시조인 김 수로왕(首露王)에게 시집온
허황옥의 고향은 과연 어디일까?

허황옥이 가락국에 올 때
오라버니가 함께 왔는데 이름이 장유화상이다.
경남 김해의 장유면은 그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처음에는
하나의 설화에 불과하다며 무시해버렸던
가락국의 이야기.
이제는 가능한 실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날 600여만 명이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인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가락중앙종친회]는
인도 아요디야시 갠지스강 일원인
사류강 주변 10여만 평에  ‘가락공원’을 조성하였고
경남 김해시는 아요디야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허 왕후 유허지 기념비와 함께
김해박물관 앞 문화의 거리 2㎞를  ‘아유타로’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허 왕후의 고향은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인도 북부 산악지대인
갠지스강 중류의 [아요디야]가 아니라
남동부 해안에 있는 같은 이름
[아요디야 쿠빰]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말과 비슷한 단어가 수백 개가 되는
타밀어를 쓰는  남동부 타밀 나두주(州)의 주도
첸나이 동쪽 바닷가 마을이 [ 아요디야 쿠빰 ]이다

타밀어와 우리말 사이에는 유사점이 아주 많다
타밀어와 우리말은 뜻글이자 소리글로서
완전히 같거나 아주 비슷한 단어가 수백개나 되고
어순도 같다.

허 왕후가 자신의 고향말인 타밀어를
가야 사람에게 전해 그것이
고스란히 우리말에 남은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단군의 자손,
배달의 민족.
그 옛날을 증거할 만한 자료는 없어지거나
모두 없애버렸기에
지금 남아있는 것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밖에 없다
고조선 뿐만 아니라
가야 백제 등 고대국가들에 대한
너무나 빈약한 사료 탓에 
문헌의 글자 하나 구절 하나를 근거로
이리저리 상상력을 펼친다고 할 수 있지만,
어찌되었건 우리의 조상의 자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 이상인 건 만은
확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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