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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백년식당 비빔밥

by 창밖의 남자 2021. 3. 14.

 

우리 옛 말에
까불면 국물도 없다는 얘기가 있고
국물없이는 밥을 못먹겠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 말은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가
국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우리 음식에는 끓이는 게 유난히 많은데
아는체 하며 어렵게 얘기한다면
湯 탕은 국물 위주의 국이고,
羹 갱은 국물이 적은 국이라 하였으니

쉽게 말하면
국물이 많은 것은 국이라 해서
미역국, 소고기무국, 콩나물국, 토란국이 있고
국물이 적은 것은 찌개라 부르며
많이 찾으면서도 자주 먹어도 물리지 않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두부찌개 등등
탕은 국이고 갱은 찌개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이 그렇게 얘기한다지만
곰탕 설렁탕 내장탕 매운탕 보신탕 등은
국물을 가득 담아 밥을 말아먹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어색하기는 하다

흔히 한중일 3개국은 젓가락 국가라 말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음식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젓가락은 없어도 숟갈 없이는 먹을 수 없는
국물 위주의 음식 문화임에도
그것과는 다른 별종 음식이 있다

바로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국물이 없기에 탕도 아니고 갱도 아니다
거기에다가
가짓수만 많고 변변하게 먹을게 없다는
한정식과는 달리
똑똑한 애들만 한 그릇에 모아서 먹기에
허접한 반찬 낭비도 없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우리의 대표 음식이다

안동 헛제사밥이라는게 있을 정도로
제삿날에
많은 사람이 간단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게
비빔밥이며
명절 다음날에
이런저런 나물들과 반찬들이 많이 남았을 때
냉장고 떨이차원에서 자주 먹게 되는게
비빔밥이다

이름은 하나지만
어떤 재료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맛은 아예 다르며
천차만별 종류도 많기도 많은게 비빔밥이다

먹다남은 찬밥을 커다란 대접에 가득 넣고
들기름과 고추장에 썩썩 비벼먹는 집비빔밥,
간장을 넣어 비벼먹는 콩나물 비빔밥,
초장을 넣어 비벼먹는 새싹 비빔밥
나물없이 날계란 하나만 깨어 넣고 간장으로
간만 해서 슥슥 먹는 밥도 비빔밥이다

그런데
우리 음식은 꽤나 전문화되어 있다고나 할까
아니면 일종의 몹쓸 병폐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한 곳이 유명하면 나라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굴비는 오직 영광에만 있을 뿐이며
오징어는 울릉도에서만 잡아야 하며
고추장은 순창에서만 담가야 되고
갓김치는 돌산섬에서만 자랄뿐이며
물냉면은 평양냉면만 먹어야 한다는...

비빔밥은
그런 면에서도 별종이요 자유로운 존재이다
집 비빔밥이야 제 각각일 수 밖에 없다지만
바깥에서도
산채비빔밥 꼬막비빔밥 봄나물비빔밥 등
여러가지 메뉴가 있는게 비빔밥이기도 하다

어디 그것뿐이랴
비빔밥은
전주비빔밥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라도 전주가 아닌
경상도 진주에 가면 진주비빔밥도 있다

차림이 옹색하면 비빔밥이 아니다는 말처럼
전주비빔밥에는 콩나물을 비롯하여
대추 밤 은행 잣 표고버섯 등 15가지나 되는
여러 재료가 가득 들어가 모양새도 화려하다

그에 반해 진주비빔밥은
육회를 중심으로 숙주나물과 고사리 무나물 등
일곱 가지 재료만 들어가 단촐한 느낌이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화려해지면서
가격 또한 비싸져 가는 전주비빔밥과는 달리
진주비빔밥은 반찬 가지수도 적어 소탈하지만
맑고 시원한 선지국이 딸려나오는게 특징이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식당
오랜 세월이 지나갔음을 실감하는 낡은 식탁
옛날 학교다닐 때의 교실처럼 나무로 된 창문틀
비록 건물은 오래되고 낡았지만 어디를 보아도
반짝반짝 빛나도록 단정하고 깨끗한 실내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억지춘향의 밥이 아닌
집은 비록 누추하지만 기품어린 양반집에서
고즈녁하게 밥상을 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식당이 아닌 집에서 먹는 듯한 한그릇의 밥

백년식당
지은 지 백년이나 된 낡은 일본식 집이지만
3대를 지나면서
백년의 맛을 지녀온 식당

아!
식당의 음식도
우리가 물려받아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인식하게 만든
진주 천황식당에서 먹은 진주비빔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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