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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붓으로 먹으로 그린다

by 창밖의 남자 2021. 1. 30.

한지가 아닌 하얗고 두툼한 천 위에
가느다란 붓으로 먹으로 건물을 그린다
수묵화다
이럴수가!
처음 만나보는 놀라운 그림이다

경희궁 옆 골목가에 위치한 갤러리 마리에서
1월 15일부터 2월 9일까지
이여운 작가의
《 Façade Project》가 열리고 있다

다음 글은
신문 Viewers지에 게재된
이여운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였습니다

▲ 전시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
파사드는 건축물의 얼굴이자
건축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알레고리이며,
건축가의 독특한 미적 어휘로 구성된
예술작품이다.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의 성당과
뉴욕의 마천루 빌딩, 우리의 궁궐과
근·현대 건물을 소재로
전통 계화(界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입체감을 드러내는 사실적 표현 없이 오롯이
그것들의 파사드 정면도만으로
아우라와 정면 승부하는 이유이다.

▲ 먹으로 건축물을 그리는 이유는?
=
나에게 건축물이란
인간의 삶의 형태와 인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다.
내가 건축물에서 집중하는 것은 인간이 남긴
흔적들이다.
건축물은 인간이 삶에서
고민하고 시험하고 변화한 것들이
건축 양식으로 남아 유한한 것들이 살면서
남기고 간 시간을 품고 있다.
건축물 자체가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짧게 왔다가는 인간들의 유한한 모든 것들을
품고 있는 모체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 한지가 아닌
천에 먹으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
사실 한지보다 캔버스 천이
붓으로 선을 긋기에는 어려운 재료이다.
한지에 한번에 그으면 될 선을
천에는 5-6번은 그어야 표현이 된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천의 투박함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표현하려는 주제가 너무 기술적으로만
보여지는 것을 적당히 중화시켜 주면서
잘 그려지지 않는 먹 선을 여러 번 긋게 되면
먹이 쌓여가는 깊이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너무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기술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것을 배제하려는
성장과정에서 비롯된 성향이기도 하다.

▲ 이번 전시를 설명하면?
=
‘파사드 프로젝트’에 전시된 수묵 건축물은
빼어난 투시와 부감, 채색과 음영으로 생성된
화폭 안 공간으로 관람자들을 초대하지는 않는다.
대신 내 앞에 당당히 평면의 가면을 쓰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나를 향해 밀고 나오는
건축물의 파사드들은
모네의 루왕 대성당 연작처럼
빛으로도 나의 눈으로도 잡을 수 없는
신기루가 아니다.
한갓 과거 속에 파묻혔던 낡은 껍데기가 아닌,
꼬불꼬불 주름지거나
수직상승하는 문양이 되었든
신묘한 동물과 성자와 신들의 각인이 되었든
파사드 알레고리는 현재의 나를 마중 나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건축의 어휘를 평면 회화의 어휘로 번역해 가는
번역자의 과제를 수행하며
가히 파사드 프로젝트를 수행중인 것이다

▲ 초기의 작품은 무엇이었고,
현재 작품과의 연관성과 차이점은?
=
초기에는 풍경으로서 도시를 그리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풍경적 요소를 제거하고
건축물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기존에 평면에서 강요 받았던 풍경의 요소,
즉 원근법이나 구도 같은 것이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어
회화적 요소를 없애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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