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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산에 가기

by 창밖의 남자 2020. 11. 21.

 


2020년 초 겨울 부터 시작한 코로나
이제는 좀 잠잠해 질 때도 됐건만
죽지도 않고 또 다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뭉치면 망하고
흩어지면 산다는
코로나 방역

 

별 대책도 없이
사람이 모이는 곳은 가지말고
사람과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방역지침에 따라


이리저리 나름대로는 바쁘게 지내던 백수가
중앙박물관 전시 해설도 중단되고
자유로이 다니며 찍던 사진도 눈치가 보이고
글씨를 배우던 서예실까지도 문을 닫는 바람에
오갈데 없는 하릴없는 백수건달이 되어버렸다

서문 / 좌익문

맛있고
값이 싸면서
양도 많이 주는
그런 음식점은 거의 없지만

돈이 안들며
빡쎄게 운동하면서
친구들과 어우리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백수의
건강 비법은?



등산!
산에 가기다

동문 / 우익문

 

어느 날 갑자기
하릴없는 백수가 되어
하루 종일 시간은 넘쳐나는데
딱히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갈 데가 없다면

말없이
반가이 맞아주는 곳이 있다
바로
산이다


북문 / 전승문

그리하여
가까운 동네에서
끝까지 이리저리 버티던 옛날의 국장님과
지점장 경력을 살려 끈질기게 하는 감사님
안쓰는게 버는 거라는 백수
그렇게 셋이서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문 / 지화문

 

중학교 고등학교 교가를 부르면
항상 나오는 삼각산
학교 다닐 때는
지금은 북한산이라 부르는
그 곳이나 도봉산 아니면 수락산
드물게는 불암산을
혼자서
종종 다니곤 했지만

서문 / 좌익문


게으른 탓인지
먼 곳은 집에 올 때 피곤하다는 생각에
가까이에 있어
휭하니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산
남한산성을 주로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걸어도 끝이 없이 들판만 보이고
일년내내 산 한 번 구경도 못하기도 한다는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과는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땅의 대부분이
높고 낮은 산 그리고 얕은 언덕 사이에 있기에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자연이
산이다

더구나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에는

흔히 內四山 내사산 이라 하여
한양 도성을 쌓아올린
남산 백악산 인왕산 낙산 뿐만 아니라
외사산 外四山으로는
북으로 북한산 동으로는 용마산
남으로 관악산 서로는 덕양산이 있으며

집 가까이로는
검단산 대모산 구룡산 아차산 일자산 등등
사방이 온통 산 산 산
산 투성이다



남한산성에 간다고 하면
그런 곳도 산에 들어가냐고 웃는 이도 있지만

오르막내리막
산성을 한 바퀴 도는데만 해도
9km
빡빡하게 세 시간이 걸리는
만만찮은 거리이고

등산로 초입에서 산성에 오르기 까지가
빠른 코스는 왕복 두 시간
돌아가는 코스는 세 시간도 더 걸리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우습게 볼 수 있는 산길은 아니다


그뿐 만이 아니다
남한산성에 오르면
남한산 한봉 벌봉 연주봉 등이 연이어 있고
남과 북으로는
청량산 망덕산 영장산 검단산 불곡산 등
산과 산이 어깨를 나란히
산에 산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기에


체력만 따른다면
새벽부터 집을 나서
밤중까지 산속으로 헤매고 다닐 수도 있다


약 좋다고 남용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는 말도 있지만
산 좋다고
무릎 상하도록 무리하게 다닐 것은 없다

산이 있어 산에 가지만
산이 낮다고
산을 우습게 보는 오만함을 버리고
산이 주는 산기운을 받으며

코로나가 없어지는 그 날이 와도
겸허하게
산에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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