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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세느강과 미라보 다리

by 창밖의 남자 2020. 11. 2.

중학교 때
학교 앞으로 조그만 개천이 흘렀다
이름하여
세느강
우리들은 그렇게 불렀다

지금은 중앙대학교의 단과대에 속해 있지만
당시에는 하나의 독립된 학교였던
서라벌예술대학이 중고등학교와 같이 있었다

명색이 예술을 전공한다는 대학생들이기에
이름도 그렇게 멋진
세느강이라 붙였다고 여겼는데
서울대 문리대 앞 개천도 그렇게 불렀다고하니
아마 그 당시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느강,
프랑스의 낭만이 가득 담긴 멋진 별명이지만
실제로는
쓰레기들이 쌓여있고 시꺼먼 하수물이 흐르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더러운 구정물이었다
그때는 서울 시내를 흐르는 개천들이
다 그랬다

교문 바로 앞으로는 다리가 놓여있지 않았다
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그 유명한 미아리텍사스촌을 따라 흐르는
개천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더러운 물이 흐르는 사이사이마다 놓여진
돌 위를 딛으며
우리들은 세느강을 건넜다

국어 과목과는 별도로
《작문》 이라는 과목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수업시간에도
시꺼먼 선글라스에
꽤나 비싸보이는 바바리를 입고 다니신
폼생폼사 선생님이 었는데
그 징검다리를
《미라보 다리》라 불렀다

물론 학교로 가는 넓은 길에는
차가 다니는 버젓한 다리가 있었지만
조금 멀리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기에

세느강 징검다리는
길음동 버스정류장에서 학교 교문으로 통하는
가장 짧고 빠른 길
지름길이었다

그런 까닭에 시간이 바쁜 아침 등교시간이면
냄새나는 똥물에 운동화를 적실 수도 있는
그런 더러운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우리는 세느강을 건넜다

구멍이 숭숭뚫린
시꺼먼 철판을 깔아서 만든
간이다리가 설치된 것은 한참 후였다

지금은
세느강도 다리도 학교도 텍사스도
모두 없다

개천은 복개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학교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한때 서울의 명소로까지 잘못 알려졌던
그 유명한 미아리텍사스촌
그 곳도 스물스물 유명무실해지면서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세느강 물줄기의 윗쪽,
상류라고 말하면 엄청나게 먼 곳 같아
웃마을이라고 하면 될 듯한 개천이
오늘의 정릉천이다

숭덕초등학교 지점부터 종암사거리까지는
복개되어 정릉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이후의 구간은
내부순환로가 하천을 따라 뻗어 있어
외관으로는 물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산에서 흐르는 계곡 물이 맑아
청수동(淸水洞)이라 불렀던 동네

어렸을 때 정릉가는 3번 시내버스의 종점이
지금도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청수장(淸水莊)이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이 지은 별장 이름이었는데
한국전쟁 이후에는
요정으로 쓰였다고 한다

세느강
미라보 다리의 추억과 함께
거품나는 생활 하수와 시꺼먼 오수
말 그대로 똥물이 넘쳐 흐르던 곳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깨끗한 물이 흐르게 되었다

청수동이라는 옛 이름에 걸맞게
지금은
맑고 깨끗한 물이
오늘 정릉천을 따라 흐르고 있다

맑은 물길을 따라
맛집과 찻집이 줄을 이어 있고
개울장이라는 장터도 열리고 있다한다

사람들이 망가트린 자연이지만
사람들이 다시 살려놓은 것 또한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자연 환경이다

예전에는 개천이 너무 더럽고 더러웠기에
도저히
용이 살 수도,
용이 나올 수가 없었으나


이렇게 맑고 깨끗한 개천이라면
어디 용만 나오겠나
연꽃도 피우고 버들치 미꾸라지도 헤엄치고
모두가 행복한
꽃동네 새동네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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