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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차례상과 제사상

by 창밖의 남자 2020. 8. 20.

 

이른바
뼈대있는 집안이라고 양반집네 자손이네 하며
어깨에 힘께나 들어가며
헛 기침하시는 분들에게
홍동백서가 뭐고 어동육서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자못 가당치않다는 듯한 눈빛을 띄며
모름지기 양반집안에서는 이 정도는 기본입네 하며
제사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자랑스레 설명해주는 분들이 적지않게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함은
대추, 감 같은 붉은 색 과일은 동쪽에 놓고,
밤, 배 같은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지요
제사상이라면 이 정도는 차려줘야
양반집이라고 말하고 다닐수 있지 않겠소??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데 무슨 원칙이 있겠어요
어떤 집은 조율이시(棗栗梨枾)라 하여
대추 - 밤 - 배 - 감 순서로 놓는다고 하자...

허허 그런 쌍스러운 집안도 있구만
양반집이라 하면
본디 조율시이(棗栗枾梨)라 하여
왼쪽 부터, 대추- 밤- 감- 배 순서로 놓는다네

그런가요?
家家禮라는 말이 있지요
제사는 집안마다 집집마다 다르지 않나요?

양반집이라면
상 다리가 휘도록 가득가득 차려야 하는게
후손들의 마땅한 도리라고 여기는
그런 집안들이,
안타까운 현실인데
놀랍게도
그런 분들이 아직도 많다

퇴계 이황 선생댁의 제사상

영남 지역의 대표적 유학자인 퇴계 이황
생후 수 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엄격한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소박하고 건전한 삶을 신조로 여겼던
퇴계의 어머니는 평소 검약한 생활을 강조했다

진성 이씨 퇴계 집안의 검약 사상은
제사상에서도 금방 알 수 있다
다른 집에서는 제사 제물이 평균 35~40종인데 반해
진성 이씨 택의 제사 제물은 26가지에 불과하며

특히 퇴계 선생의 제사상에는
유과나 정과 등의 한과류를 올리지 않고 있는데
퇴계 선생이 생전에
● 勿用油密果 물용유밀과●
기름에 튀긴 과자는 사치스러우니
제물로 사용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기 때문이다

검소한 제례 문화는
영남의 진성 이씨 집안만이 그런게 아니다
조선시대 소론의 영수로 백의정승이라 불린
파평 윤씨 명재 윤증 선생의 종가에서도 볼 수 있다

소박한 명재 윤증 선생댁의 제사상

윤증 선생의 명재 종가에서는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고조부모 까지 지내는 이른바 4대 봉사를
부모-조부모 까지만 지내는 2대 봉사로 축소했으며
제사상의 크기 자체도
990mm x 680mm로 정해 둠으로서
간소한 제사 문화를 앞장서서 보여주고 있다

내가 집안 장손이 아님에도
아니 제사상을 저렇게 차려도 되는거야?
그렇게 말 할 정도로
검소하고 소박한 수준이 아니라
초라하게까지 보이는 상이다

일반 여염집도 아닌
우리나라 양반 문화를 이끌어온
소론의 영수이자
충청도를 대표하는 명문집안으로
파평 윤씨 명재 집안에서 차린 제사상이라니

뼈대있는 양반집에 시집간 분들은
시집 어른들에게 슬쩍 물어보시기를,
우리 집안이 명재 집안보다 더 양반이지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리나라에도
명재 집안 같은 명문이 아직 있다는 것을 참고하시기를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다양한 제사의식을 해왔다
왕실에서는 종묘의 제사를 으뜸으로 여겼고
일반 사가에서는 때가 되면 조상의 제사를 지냈다

제사는 그냥 단순한 의례 절차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의례로서
조상을 섬기는 일뿐 아니라
가족간의 화목을 도모하고 다지는 계기가 되어왔다

피하지 말고 즐겨라!
제사가 가진 순기능을 활용하고 재창조하는
멋진 후손이 되기를.....

제사!
일 년에 열 번이나 지내다가
집안 기둥이 뿌리가 뽑혀나가고
명절이 돌아오면
며느리들은 허리가 휘고 몸져누운다는
마마 호환보다도 무섭다는
그 무서운 제사
그 누구를 위한 제사인지?

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양반 집안이네 뼈대있는 집안이네하고
떠드시는 분들
우리 집 족보가 이러고저러고 하시는 분들

올 추석에는 다가올 설날에는,
적폐청산!

제사상인지 차례상인지
분별도 못하면서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아는 체 하지 말고
조상님들이 반갑게 찾아오실 수 있도록
격조있고 품위있는
차례상을 차려보시는게 어떠할런지?

아직은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제사를 맡게 될 장남의 입장에서
기제사와 차례는
형제들의 우의와 단합을 위해서
조카들의 가족애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꼭 지내고자 한다

그러나
홍동백서니 조율이시 같은 얘기는 싸그리 무시하고
평소 우리가 먹던 밥과 반찬 그대로
제사상에 올릴 생각이다

이를테면
비빔밥도 김밥도 비빔국수나 장국수 등등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즐겨드시던 음식을 차리고
자손들도 고인을 기리며 같이 밥을 먹는
食口
진정한 식구로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제사를 만들고 싶다

한가위 명절 즈음에 방송을 보고듣노라면,
"추석 제수(祭需) 용품 사러 나온 주부들로 시장이 붐빈다” 라고 기자들이 보도한다

하지만 추석은
제사가 아니라 차례를 지내는 날이기 때문에
《차례(茶禮) 용품》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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