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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우리동네 카페

by 창밖의 남자 2020. 8. 12.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우리 동네?

정답 같은 것은 당연히 없지만,
조금 큰 아파트 단지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반경 삼백미터 정도면,
왕복으로 따져서 버스정류장 하나 정도의 거리라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뜬구름 없이 웬 동네 한바퀴 타령?

내가 사는 동네에는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카페가 많이 눈에 띈다. 
집 밖을 나서게 되면 온통 카페 천지다. 
문득 얼마나 많은 카페와 커피전문점들이 개업하고 있는지 
궁금해 졌다. 



어느 일요일 조금 이른 아침날, 
조용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며 
한 집 건너 두 집 건너의 찻집들을 
챙겨 온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이쪽 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부터 
저쪽 다른 길가에 있는 정류장 까지를
동네 한 바퀴로 삼아
큰 길과 골목 골목에 있는 카페들을
하나 둘 둘러보니 자그만치 서른 곳이 넘었다.
대단한 숫자다!  



올망졸망하게 귀엽게 생긴 조그만 카페부터  매장이 2층에도 있는 큰 규모의 카페까지,
크기도 제 각각이고 
모양도 제각각이고  
뜻도 모를 카페 이름도 모두 제 각각이었다.




​다방과 커피숍, 그리고 오늘의 카페

 

고려시대 부터 등장했던 용어, 
茶房. 
다방이 ​본격적으로 커피와 차를 팔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부터 라고 한다.


현민이라는 작가는 
「현대적 다방이란」(『조광』 1938.6) 글에서
‘차를 파는 다방’과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으로 나누고 있다. 

‘명과’, ‘금강산’, ‘아세아’ 등은 대체로 개방적인 분위기에 찻값이 싸고 남자아이들이 급사로 있지만 그러한 곳은 차를 파는 가게이지 다방이 아니라고 했다.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은 찻값이 다소 비싸지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의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러한 문화공간이 다방이라고 했다.

요지경 같은 일제시대의 서울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예전에 내가 다녔던 학교 앞에,
당시 대학가에서는 제법 이름이 난
유명한 다방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암]다방.

고등학교 때에도
대학생이었던 누나한테도 얘기를 들었던 터라,
입학 초에 같은 과 친구들이랑 가려 했으나
아무리 봐도
암다방이라는 상호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학교로 되돌아가 선배에게 물어보니
마구 웃으면서 하는 말이,
너희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도 여기까지 일부러 와서
허탕치기 일쑤라며 
 [Amsterdam]다방을 암다방이라 
줄여 부른다고 했다. 


가서 보니컴컴할 뿐 만 아니라 
엄청 시끄러워 애기하기도 힘든 곳이었지만
다른 대학의 애들도 명성을 듣고 일부러 찾았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아련한 추억의 다방이다. 


그러한 그 때의 70년대 대학로에, 
삐그덕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하는
2층에
조그맣고 낡은  [학전]이라는 다방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곳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날에 가보니
이름만 학전일 뿐
분위기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변했기에
차도 안마시고 그냥 나와버린 적이 있다.


연대앞의 독수리다방은 그보다 더 심했다
여기가 그곳이라고?
예전의 자리에 그냥 이름만 독수리​였다



오늘 날의 우리들은 
옛 것은 구닥다리라고 기피하면서 
새 것과 새로운 것, 서양 것을 좋아하는 듯 싶다.


조금만 지나도 시대에 뒤쳐져 보인다며
새 것으로 새로운 것으로 바꾸면서도, 
한쪽에서는
오래된 서양의 것을 [빈티지]라고 애서 찾아 다니며
동경한다. 
사르트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단골로 자주 드나들던  '레되마고 카페'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아간다고한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탈고한 테이블,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탁자라는
글귀들이 씌어있는 카페를
애써 찾아와서는 그들의 발자취와  만난다.  
세월의 때가 묻은 그 카페의 탁자나 의자는
하나의 ‘스토리 상품’이 되었고, 
파리의 카페는
이제 카페의 기능을 넘어
하나의 문화상품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 
헤밍웨이가 없고 
카프카도 없기에 
그러한 이야기가 있는 다방이,
카페가  없는 것일까?

 

​우리 동네 한바퀴에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카페보다 
더 많은 서른 곳이 넘는 카페가 있음에도,
옛 이야기가 도란도란 흘러 나오고
보라빛의 아련한 추억이 묻어나오는 카페가 있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없다.

다만 별 다방에는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가 좋고 
콩 다방은 인터넷 단자가 넉넉해서
노트북 가져가면 좋다는 얘기만 들려온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고
동네 방네 자랑하면서도, 
이 넓고 넓은 서울에
그 많고 많은 카페 천국에
진솔한 이야기 하나 들려주는
고즈녁한 다방 하나  없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세차게 바람 부는 날,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날에  
좋은 사람과  자리를 잡고 앉아 
정지용의 '고향'을 들어 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그러한 다방이,
이제는 몇 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머지않아 광복 75주년이라고는 하는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100년은 커녕 10년 전의 것도  보이지 않네.

우리가 가졌던
그 많던 우리의 빈티지는
모두 다 어디에 버리고 내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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