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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다방

by 창밖의 남자 2020. 6. 27.


더운 여름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한 잔의 모카 라떼를 마시면
그 곳을 카페라 하지만

노란자가 동동 떠있는
추억의 쌍화차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면
우리는 그곳을 다방이라 부른다오

마치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듯
시계 초침까지도 더디게 흘러가는 곳



그 곳에서
말 그대로 다방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물끄러미
창밖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구랴

그때
요즘 진짜로 보기 힘든
나비 한 마리가 날라와 창가에 앉았지
어디서 왔을까
저 나비는 나를 보려고 이곳까지 왔을까
아니면
꽃잎이 예뻐서 여기에 놀러왔을까
바쁜 일도 없기에
그저 멍하니
나비가 사라진 창밖을 바라보았다우



퇴직해서 사무실 하나 장만했냐고?
그렇다우
이곳이 내 사무실이지
집에 핸드폰을 두고 와도 문제가 없지
여기 전화가 바로 내 전화이기도 하지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시구랴
번호는 2272- 1886
이곳 을지다방으로 전화해서 나를 찾구랴
손님이라고는 나 밖에 없으니
굳이 이름을 대지않아도 된다우



심심하지 않냐고?
아니
이곳에는 멋진 사장님이 있지
내 집처럼 맛나게 끓여내오는 오미자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얘기를 해도 된다우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곳
다방!
이곳이 바로 거기라우

 



세련된 맛은 적지만
때로는 칙칙한 느낌도 들기도 하지만
조그만 지나면 익숙해지는 곳
뭔가
옛날의 고향 집에 와 있듯한 느낌이 드는 곳
시내에 나오게 되면 한 번 들러보구랴




시내 나올 일이 없더라도
문득 옛날의 한 장면이 그립다는 생각이 나거든
지하철을 타고
이곳 을지로에 오시구랴

명가의 노포라는
오구반점에서 노르스름하게 튀긴 군만두 한 접시나
을지면옥에서 시원한 평양냉면 한 그릇 자시고

바로 옆 계단으로 올라와
이곳 을지다방에서
맛난 쌍화차 한 잔 들고 가구랴.

사는게 뭔지 몰라도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건지 몰라도
그냥 차 한잔 마시면
이렇게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않다고 여길 수 있을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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