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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그림 속에 시

by 창밖의 남자 2021. 5. 2.

이상 그리고 구본웅

미술과 문학의 만남,
화가와 시인이 만났다
그림쟁이와 소설쟁이가 만났다

장욱진, 사찰, 1977


문학동이라는 동네와
미술동이라는 동네는
마치 화성과 금성이라는 별개의 동네일까

김소월 시집, 천경자 그림


詩中有畵 畵中有詩
시중유화 화중유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말은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보고 내린 소감이다

김환기 산문집

《 시 속에 그림이 있다 》는 것은
왕유의 자연시가 지니고 있는
뛰어난 형상미를 가리키는 것이고,

《 그림 속에 시가 있다 》는 것은
왕유의 산수화에 담겨 있는
심오한 의경미(意境美)를 가리키는 것이다

황순원 소설집, 학, 김환기 그림


옛사람들은
예술의 형상화라는 측면에서
시와 그림은 하나라고 보았다

詩畵一律論
시화일률론
시와 그림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는 이야기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다소 특이한 주제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글을 쓰는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이들이 만나
한 권의 책을 만들어 펴냈다
현대미술관에서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다고 했지만
문학이 미술을 만났다고 해도 좋으리라

박태원 소설집, 소설가 구포씨의 하루

자신이 살고 있는 자신의 시대를
자신의 시선으로 표현하고 엮어내려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화가라 부르고 작가라 칭한다

화폭으로 나타나면 그림이 되고
한 줄의 글로 표현하면 시와 소설이 되어
그림쟁이가 되고 글쟁이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콜라보>라고 해야 할까
후세에 남길 멋진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당대의 내로라하는
작가와 화가가 힘을 모았다
김환기 황순원 김광균 이중섭 백석 천경자...

노천명 시집 / 김환기 그림

윤동주 시집 / 김환기 그림

이 한 장의 그림
불이선란도 不二禪蘭圖 라고도 하고
부작란도 不作蘭圖 라 부르기도 하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그는 그림을 그린 것일까 글을 쓴 것일까?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문학이니 미술이니
서예니 서화니
동양화인지 서양화인지
구상이니 비구상이니
구분을 짓고 편을 나눌 필요가 없다
그냥 보고
내 마음 가는대로 맡기면 되지 않을까 한다

책만은
책 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 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 대한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는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그렇거늘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와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영웅이기 때문이다....

/ 이태준, 冊, 무서록, 1941

세상이 휙휙 날라다니는 지금
PC나 핸드폰으로 읽는 디지탈 책을
외면하고
책의 표지가 이렇고저렇고 궁시렁대는게
구식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생각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아이유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도
mp3 음원으로 들으면 그만이겠지만

표지가 예뻐서
온갖 불편함을 무릅쓰고
cd를 사서 애지중지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찻집으로 바뀐
성북동의 한옥집 수연산방에 살던
상허 이태준의 말처럼,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 대한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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