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다소 어둡기는 하지만
인터넷을 다니다보니
요즘에는 이런 말이 꽤나 유행한다고 한다
latte is horse
라떼는 말이다
???
latte는
뜨거운 우유를 탄 에스프레소 커피인데
카페라테도 아니고
꼰대라떼라 한다는
라떼....

개인적으로는
가급적 그런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보리밭을 만나면 바로 그렇다

라떼는 말이야!
보리밭하면 생각나는건
아이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보릿고개 깡보리밥 배고픔 굶주림 까끌까끌
늦봄...
​
이런 단어들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푸른 보리밭을 보면
구슬픈 듯
청아한 노래가 저 멀리서 살며시 다가온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진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의 가곡
보리밭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에서의 피난생활중 만들어졌다고 한다
​
그렇지만
노래가 발표된 후에도
오랫동안 관심을 끌지 못하였으나,
1970년대 초반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가수 문정선,
시원한 목소리로 보리밭을 불러
처음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노래좋네 했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그동안 잊혀졌던 가곡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6.25 난리통에 서울서 부산으로 피난 온
작사자 박화목은 종군기자로
작곡가 윤용하는 해군 음악대원으로 활동한,
두 사람은 친구사이였다

둘은 술자리에서
후세에 남길 가곡 하나 만들자고 뜻이 맞았고
​
박화목은
고향 황해도의 보리밭을 떠올리며
<옛생각>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서
윤용하에게 주었고
​
​그는
받은 시에
3일 만에 곡을 만들면서
제목을 《 보리밭 》으로 바꾸었다

40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윤용하는
너무나 어려운 생활을 꾸렸던 탓에
종이상자를 뜯어 여민 단칸방의 거적 위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
황해도 은율태생인 윤용하는
<나뭇잎 배> <노래는 즐겁다>
정인보 선생이 가사를 쓴 <광복절 노래> 등을
작곡했다

경상도 지방에서
가까운 친구사이에서 애용되는 호칭,
보리 문둥이
문디 가시나

경상도 지방에는 겉보리인 보리가
전라도 지방에는 쌀보리가 많이 재배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영남쪽이 다른지방에 비해 벼슬을 많이 했기에
文東人 문동인 : 글을 잘하는 동쪽 사람이 와전되어
문둥이(문디)가 탄생되었다는,
애칭이 생겼다고 하는데
억지로 미화시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
또 다른 미확인 썰의 하나는,
중국에서 온 흉노족 출신 노비들이 모여살았던
대구 부산 울산 등지에서
피부전염병인 문둥병이 크게 번졌기에
그 이후로
보리밥만 먹던 경상도 거지가 문둥병 걸렸다고
경상도 보리 문둥이...
믿거나말거나
이런 썰도 있다는 얘기지만
이러다
보리문딩이들에게 몰매 맞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 이그~~ 문딩아! > 라고 하면
그리 나쁘게 들리지 않지만
문둥이
나병 환자라고 하다가 언제부턴가
한센병 환자라고 하는
문둥병은
예전부터 상당히 무서운 병이었다

나 때 보다도
이전인 50년대에
그 때에
보리피리 시인이 있었다
한하운
이른바 문둥이 시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
「전라도길 - 소록도 가는 길에」

● 만화로 보는 교과서 인물에서
/ 강문채, 북이십일 아울북

이제
라떼는 갔다
굶주림의 깡보리 시대는 갔다
​
보리는
최고의 자연 강장제로 각광받고
보리빵 보리국수 보리차 등으로 가공되면서
성인병을 예방하는
파워푸드 슈퍼푸드로 불리고 있다
​
보리밭은
눈물의 보릿고개가 아닌
관광객을 유혹하는
낭만 가득한 푸른 청보리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