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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신문 연재소설

by 창밖의 남자 2021. 4. 14.

중학생 때 일요일이 오면 자주
사직공원 안에 있는 종로도서관에 갔다
공부하러 간게 아니고
도서관에 가득하게 있던 책을 보러 갔다

어느 날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점심으로 가락국수를 먹고나서는 심심풀이로
식당 벽에 쭉 붙여놓은 오늘의 신문들 가운데
조선일보를 보다가
별들의 고향이라는 연재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집에서는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었기에
도서관에 오면 조선일보를 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신기한 것은
별들의 고향이라는 소설을
단지 그 날의 연재분 하나만 보았을 뿐인데
경아라는 주인공이 내 가슴 안으로
강력하게 들어와 꽂히는게 아닌가?

궁금했다
한 줄의 내용으로 이렇게나 관심을 끌게하는
이 연재 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그리고
최인호 라는 작가의 이름도 기억에 담았다

그 이후로
종로도서관에 갈 때 마다
생활 주변에서 조선일보가 눈에 띌 때 마다
별들의 고향을 읽어대었다

신문 연재가 끝난 뒤
두 권으로 출간된 소설은 100만부쯤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74년 이장호 감독, 신성일·안인숙 주연으로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영화는
이곳에서만 관객 46만5000명을 모으며
당시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경아가 보고 싶어
지금은 절판이 된 별들의 고향을
알라딘을 통해 중고서적으로 주문하였다

내가 별들의 고향에 빠져들듯이
흔히들 신문에 매일같이 연재되는 소설들은
신문사가 자신들의 구독 부수를 늘리기 위해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수단이기에
통속적이고 흥미 위주로 된 저급한 내용이라고
깔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난 신문들을 들추어보면
심훈의 상록수를 비롯하여
염상섭의 삼대와 채만식의 탁류 그리고
김동인의 젊은 그들과 이광수의 단종애사 등등
수 많은 소설들이 연재되었다

우리가 들어왔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한국문학의 고전이라 할 만한
이들을
삼류라고 통속적이라고 흥미위주라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 뿐이 아니다
소설과 함께 매일 같이 게재되는 삽화는
심산 노수현과 청전 이상범을 비롯하여
석영 안석주, 웅초 김규택, 청구 이마동 그리고
정현웅 등 당대의 쟁쟁한 화가들이 그렸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연재소설이지만
조선일보에는 홍명희의 임꺽정이
동아일보에는 이광수의 단종애사로
양대 일간지가 맞붙었던
지난 1928 ~1929년이 신문 연재소설의
황금기라고 한다

조선 동아 양대 신문들은 경쟁적으로
근대문학에 길이남을 소설들을 연재하였는 바

동아일보는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흙
김동인의 젊은 그들
심훈의 상록수

조선일보는
이광수의 유정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염상섭의 삼대
홍명희의 임거정
이기영의 고향
채만식의 탁류 등등
신문사의 연재소설란은 명작의 산실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의 세상은 많이도 바뀌었다

TV를 비롯한 방송의 힘이 커짐과 동시에
인터넷과 sns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종이 신문을 읽지 않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신문이 차지했던 영향력이 퍽이나 줄어들었다

그것과 함께
소설의 위상도 예전 같지가 않다
재미있는 소설도 없을 뿐 아니라
이렇다하게 주목받는 소설도 보이지 않고
수십만, 수백만부가 팔려나가는 베스트 셀러에
소설이 빠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베스트셀러가 곧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대중과의 소통 코드를 잃어버렸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념적으로 편향된 가짜 진보세력들은
한국 문학에 큰 자취를 남겼던 이문열을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면서
표절 파문을 일으킨 신경숙은
절대 그럴리가 없다며
제 편 감싸기로 적극 옹호하다보니

문학에 대한
소설에 대한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소설가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신문 연재소설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으나
나를 움직이는
내 마음을 흔드는
그런 소설이 실종된지도 오래되었다

소설 상실의 시대고
작가 실종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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