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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선유도

by 창밖의 남자 2021. 4. 18.

선유도공원은
수돗물을 공급하던
선유정수장 시설을 재활용한 생태공원이다

붉게 녹슨 파이프 위로 떨어지는 물,
지붕까지 넝쿨이 자란 저장 탱크,
연꽃이 핀 낡은 수조….

서울 선유도공원에는 곳곳에
지난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다가
2000년 12월 폐쇄한 뒤
기존 시설을 재활용한 생태공원으로 만들었다

수돗물
정수장에 설치되어 있던
녹슬은 파이프라인이나 낡은 도수로를
놀이공간이나 습지의 형태로 꾸몄다

또한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해
만들었다

말그대로
폐쇄한 정수장 시설을 그대로 이용한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으로
지난 2002년 4월 26일 문을 열었다

공원은
물을 주제로 하여
정수지와 여과지, 약품침전지 등
기존의 구조물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졌으며
한강역사관과 수질정화공원 그리고
시간의 정원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다

선유도공원은
과거 선유도가 지나온 세월과 역사를
지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재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 재생 생태공원으로 꼽히는
선유도공원은
2004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미국조경가협회(ASLA)가 주는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선유도는
본래 섬이 아니었다

선유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산으로
조선시대 말까지
선비들과 묵객들의 뱃놀이와 유람지로
명성을 날리던 곳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25년
기록상 한강 최대홍수로 알려져 있는
을축년 대홍수로
남대문 앞까지 침수되는 등
서울 전역이 물바다로 변하자
한강 홍수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서
대규모 치수사업용 채석장으로 전락했다.

조선총독부는
한강에 둑을 쌓고 도로를 만들기 위해
선유봉 바위를 조각내 골재로 채취하고
주변 백사장에서 모래를 파내면서
봉우리를 깎아내려갔다

1929년에는 여의도 비행장을 만들면서
비행기 이착륙에 지장이 있다며
얼마 남지 않은 봉우리마저 깎아냈고,
해방 후에는 미군이
인천가는 길을 닦느라고 선유봉의 돌을 캐갔다

그렇게 점점 산에서 평지로 변해온
선유봉은
1968년 한강개발이 진행되면서
산 주변에 시멘트 옹벽을 만들고,
산과 양화동 사이 백사장 모래를 다 파내
물길이 생기면서

선유봉은
한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떨어져나갔다.

여의도나 뚝섬 난지도 처럼
원래 섬이었던 곳이 매립 등으로
육지나 산이 된 경우는 많지만,
선유봉처럼
육지에 있던 산이
섬으로 바뀐 곳은 흔치 않다

선유봉은
양천구와 강서구가 서울에 편입되기 전에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양화리 한강변에
홀로 솟아 있던
해발 40m 야트막한 산이었다

산 모양이 고양이처럼 생겨
괭이산으로도 불렸는데,
한강과 한성의 산자락들을 조망하는 명승지로,
신선들이 노니는 곳이라고
仙遊峯
선유봉으로 불렸다

선유봉 仙遊峯, 겸재 정선 양천팔경첩 陽川八景帖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
봉긋 솟은 선유봉 아래 집들이 늘어서 있고,
말을 탄 선비 일행이 모래밭을 건너고 있다

선유봉 동 · 서 · 남쪽으로는
10만 평이나 되는 넓은 모래밭이 있어서
양화 · 양평리 쪽으로 걸어 다녔고,
서쪽으로는 작은 양화나루가 있어서
한강 건너편 큰 양화나루로
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
楊花喚渡
양화환도 : 양화나루에서 배를 부르다

양화환도 楊花唤渡, 겸재 경교명승첩 京郊名勝帖 오른쪽 아래 봉긋하게 솟아 있는 것이 선유봉

선유봉 아래 양화나루에서
강 건너 마포 양화진으로 건너려는 선비 일행이
손짓으로 사공을 부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
금성평사는
금성의 평평한 모래펄 이란 뜻으로,
금성은 모래내와 홍제천 사이에 있던 산
(지금 성산동)을 가리킨다.

금성평사 錦城平沙, 겸재 경교명승첩

錦城平沙
금성평사는 선유봉 근처에서
강 건너 난지도를 바라본 풍경이다.

겸재의 그림을 보면
선유봉에서 바라 보던 한강 하류의 풍광이
얼마나 빼어났을지 짐작이 된다

당시 난지도 일대는
모래내 홍제천 불광천이 물머리를 맞대고 있던
곳으로
건너편 안양천까지 합세해
이들 하천에서 흘러나온 모래들이
크고 작은 모래섬들을 만들었다.

한강 하류인 이곳 일대는
강폭이 넓어 호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서호(西湖)라고 불렸다.

금성평사를 보면
강 가운데 모래섬이 솟아 있는데,
홍수가 날 때마다 모래섬들이 달라져
절경을 이루었다.

지금은
선유도에서 건너다 보면
모래섬은 간 곳 없고
쓰레기가 산을 이뤄 만들어진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우뚝 솟아 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이 간데 없다는
시인의 노래도 옛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산은 섬으로 바뀌어버리고
섬은 강 밑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인물은?
거지 깽깽이 같은 것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한강은 말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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