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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그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by 창밖의 남자 2021. 2. 11.



.....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라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
빠른 장단의 꽹과리 소리, 느린 장단의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 퍼지는 징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참판댁 사랑에서는 흐느낌같이 슬프게 들려온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첫 대목이다
한가위를 맞이하는 평사리 마을의 풍경으로
글의 머리가
이렇게 시작할 정도로
고향에서 풍겨나오는 맛과 추억과 그리움은
우리네 마음 한구석에 깊이 박혀져 있다

故鄕
고향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 하며
그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鄕愁
향수라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 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에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국민동요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누구나 알고 누구나 즐겨 불렀던
향수가 가득 담겨져 있는 노래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져 가는 듯 하다

매년 설날과 추석이 돌아올 때마다
열 시간이 넘게 걸릴 것을 각오하고
비상한 마음으로 귀성전쟁을 치루며
고향을 찾아
내가 태어나 내가 자란 집으로 돌아갔던
이들은
돈을 벌러 고향을 떠나 서울로 서울로 올라온
7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 역군들이었다


펄벅은 대지라 했고
박경리는 토지라 불렀다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그 때의 그들이
한이 맺힌듯이 그렇게 힘들게 내려갔던건
그들의 논과 밭이 있는 곳
고향의 땅이었다

어느덧 시간도 흐르고 세월이 바뀌다보니
백만 서울이 천만 서울특별시로 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가 되었고
안양과 부천 광명이라는 위성도시에서
수원과 성남 용인 등의 거대 도시로 탈바꿈하며
이천만명도 넘게 사는 수도권이 되다보니
이제
서울은
전국민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는 고향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예전에 우리가 품었던
고향이 지니고 있던 이미지도 바뀌었고
개념도 또한 바뀌어갔다

내 고향은 이제
푸른 물결이 남실대는 남쪽 바다도 아니고
울긋불긋 복사꽃이 활짝 피는 꽃대궐도 아니다

좁다란 골목길과 급한 계단을 따라
시멘트로 지어진 회색빛 담벼락과
낮은 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요리조리 끝도 없이 연결되어진
높고도 비탈진 서울의 동네를 기억해야 한다

젊을 때 고향 집을 떠나
낯설고 물설은 서울이라는 대처에 자리를 잡고
아둥바둥하며 살아온 지도 수십년이 지났다
비록 좁고 허름한 집이었지만
걸어서 10분만 내려가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다다를 수 있어 좋았던
교통 편한 동네였지만
이제는 이곳도 안녕이다

30층도 넘게 높고높은 아파트들이
하늘이 보이지않도록 빽빽하게 가득찬
아파트 단지로 변하면
앞으로
그들의 고향이 될 터이다

육십이 넘는 산업화세대도 그렇고
오십대의 86세대들도 마찬가지로
개구리가 울어대는 고향 마을을 기억하겠지만
앞으로는
아파트가 대세인
아파트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눈앞에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은
불꺼진 아파트
우리집은 34평짜리 8층이었는데...
쓸쓸한
나의 고향집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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