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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생활

고종의 꿈

by 창밖의 남자 2020. 11. 17.

농업 사회라면
세계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의식이다
씨를 뿌린 뒤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빌거나,
가을걷이를 한 뒤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냈다

고대의 제천 행사는
온 국민이 참여하는 나라의 축제로 치러졌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은 임금이 맡았고
모두가 화려한 옷을 입고 먹고 마시며 즐겼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삼국지 위서 동이전
우리 동이족에 대한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사료로 평가받는 책이다

진수가 쓴 삼국지에 의하면
한반도에서도 제천 행사가 이루어졌다
시월 상달에 열린 고구려의 동맹(東盟),
십이월에 연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등이
바로 그거다

무천(舞天)이란 말 자체가
하늘을 향해 춤을 춘다는 뜻이다


圜丘壇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를 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 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 환구단이다
어떤 이는 원구단이라고 주장한다

● 圜丘壇 ●
본래 환은 원의 이체자로 구별 없이 쓰여서
이 건물이 세워질 때는 원구단이 맞다.

그러나 圜이
구한말 화폐 단위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면서,
동그라미 원과 화폐로 쓰일 때를 구별하기 위해
음이 《환》으로 바뀌었고
이 글자는
실생활에선 화폐 이외에는 거의 쓰지않았기에
환으로 완전히 독음이 바뀌어버렸다

석고 / 돌북


동맹 무천 등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제천은
고려 시대에도 원구제를 지냈으나

고려 말 우왕 당시
친명 정책을 펴나가던 상황 속에서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천자일 뿐이니
고려는 제후의 의례를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의해 폐지되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자만이 할 수 있으므로
제후국인 조선에서 거행하는 것은 안 된다며
사대부들은 끊임없이 반대하였다

조광조의 대표적인 개혁정치라 불리는
소격서 폐지도 그와 같은 논리였다
철두철미 모화사상이 뼈속까지 물들었다
바보 덩어리
조선의 사대부들 같으니라구!


고종은 1897년에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
본래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중국풍 별관이자
조선왕실의 별궁인 "남별궁"을 부수고
그 자리에 몇 백년 만에 다시 환구단을 지었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3층의 원형 제단과
하늘 신의 위패를 모시는 3층의 팔각 황궁우
돌로 만든 북 石鼓와 삼문 등으로 되어 있었다

고종은
환구단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낸 후 

1897년 9월 17일
《양력으로는 10월 13일》
국호를 《대한》 연호는 《광무》로 정하고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때 조선총독부는
황궁우와 석고를 제외한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광복후 조선경성철도호텔은 철거되었으나
그 자리에는 웨스틴조선호텔이 들어섰고
다른 편으로는 높고 높은
롯데호텔과 프레지던트호텔이 뻐치고 서있어
마치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 둘러싸인
한반도와 같은 형국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웨스틴조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탓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고사하고
적지않은 대한민국 국민들까지도
환구단의 황궁우와 삼문 등의 건물이
문화재라기보다는
조선호텔의 정원이나 부속물인가 보네?
등의 인식도 있다

환구단 정문은
원래 조선호텔 출입구인 소공로에 위치했는데
1960년대말 철거된 이후
오랫동안 그 소재를 알지 못하였다

2007년 우이동의 그린파크 재개발 과정에서
호텔의 정문으로 사용하고 있던 문이
원래 환구단의 정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2009년 정문의 이전 복원을 하게 되었다


현재는 호텔의 정원인양
황궁우만
외롭게 서 있고,
이 자리가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등극한 곳임을 알리는
팻말만 쓸쓸히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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