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이야기

청와대 뒷산

by 창밖의 남자 2020. 11. 15.


1.21사태
지난 1968년 추운 겨울날의 새벽
북한의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특수요원
31명이 휴전선을 넘어와
대통령 박정희의 목을 따겠다고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다


 

종로경찰서장 고 최규식 동상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분단국가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상도의가 있어야지
상대방의 최고 책임자를 암살하겠다는
그것도 목을 따버리겠다는 얘기는
평화는 고사하고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원수를 지나
철천지 웬쑤가 될 수 밖에 없다


총알이 15개나 박혀 일명 1.21소나무라 불린다

북한은
1.21사태를 일으킨 후
울진 삼척에 120여명의 무장공비를 보내
남한 전체를 혼란의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까지 나포하여
그야말로 일촉즉발
전쟁이 나기 바로 이전까지 상황을 끌고갔다



1968년 북한이 저지른 잇단 사태 이후
항토예비군이 생겼으며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 주변 일대는
서울시민들의 산행과 통행을 금지하는
통제구역이 되버렸다

 


그로부터 50년이 훌쩍 지났다
2020년 11월 부터
백악산 북측 산길이 다시 열렸다



북악산 개방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한양도성 구간 탐방을 허용하였으나
군사상 보안 문제 등으로
도성 전체가 아닌 성곽길을 따라
(와룡공원 ~ 숙정문 ~ 백악마루 ~ 창의문)
탐방로를 제한했다

숙정문/ 북대문


이번에 해제되지 않은 성곽 남쪽
청와대 뒷산 구간은 2022년 개방된다고 한다
백악산은
이제 청와대 위수지역이 아닌
서울 시민이 다니는 동네 산으로 돌아왔다


창의문 / 북문/ 흔히 자하문으로 부른다


청와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북악산 개방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북악산, 인왕산을 전면 개방해 시민들에게
돌려 드리겠다'는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의미"
라고 설명했다.



구청장 급에서나 할
등산로 개방이라는 소소한 일을
서울시장도 아닌
대통령의 공약 사업 실행이었다고
그렇게 생색을 내고 싶다면

원래 경복궁 후원이었는데
조선총독부 총독이 차지하여 관저를 지은 후
이승만 대통령의 경무대로 바뀌고
지금까지 청와대로 버티고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국민들과 가까운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한
그 때의 약속을 실행하는게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북악산의 본래 이름은
백악이다
풍수설에 따라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조선은
경복궁 뒤 백악을 진산으로 섬겼다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안중식



조선왕조실록의 태조 실록에
백악을 진국백(鎭國伯)으로 삼고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아 일반인의 제사를 금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중식은
1915년 백악산,
지금의 북악산과 경복궁의 실제 풍경을 그리며
봄날 새벽의 백악이라고
백악춘효라 이름지었지만

봄에 그린 것은 아니고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전해진다.

공극산(拱極山)이란 별칭처럼
북극성처럼 우러러보는 산이었다
백악은 전통적으로 경배의 대상이었다

심전 안중식이 그린 백악춘효도를 보면
백악산이
경복궁을 수호하는 듯한
당당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흔히들
북악산이라 부르지만

문화재청은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및 명승 제10호’로 지정하면서
백악산으로 고쳐 부르고 있으며
서울시 역시
백악산 명승구역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지금도
북악산이라 얘기한다

좀 제대로 알고 하면 좋겠지만
머리는 비었고 말로만 앞서는 사람들
따져서 무엇하리
내 입만 아플뿐

가을이 점점 깊어만 가는 계절
배낭에 계란 하나 물통 하나 가볍게 챙겨들고
백악산 구경가는 것도 좋으리라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歲寒 세한  (1) 2020.12.09
가을의 끝  (5) 2020.11.29
봉은사에서  (2) 2020.11.13
박물관에 가다  (6) 2020.11.04
나는 안중근이다  (10) 2020.10.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