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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백일홍 百日紅

by 창밖의 남자 2020. 10. 12.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테세우스가 크레타에서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퇴치할 때
자신이 살아서 돌아오게 되면
배에 흰 돛을,
그렇지 않으면 검은 돛을 달기로 한
약속을 까먹고
검은 돛을 단 채로
고국 아테네로 돌아오는 바람에
아이게우스가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깃발 색 때문에 오해해서 벌어지는
비극은
세계 여러 설화에서 단골로 보이는
클리셰다.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중에서
백일홍에 관한 얘기가
바로 그거다 

 

 

아주 옛날 옛날 옛적에
바닷가 근처의 어촌 마을이 있었는데
그 곳에
머리 여럿 달린 거대한 이무기가 나타나
어부들을 잡아먹고 태풍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데요

이무기의 극성이 날로 심해지자
사람들은 성질 나쁜 이무기를 달래기 위해
젊은 처녀를 이무기의 제물로 바쳤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을 하다 우연히 마을에 온
젊은 떠돌이 무사가 물을 찾다가
우물가에서 물을 준 예쁜 아가씨에 반했답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이무기에게 바치는
제물로 뽑히게 되자
자신이 처녀로 변장하고 가서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답니다

무사는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는데 성공하면
하얀 기를 올리고
자신이 이무기에게 죽게 되면
붉은 기를 올리겠다고 얘기한 뒤
이무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떠났데요

 

 

무사가 떠나고 난 뒤
그 처녀는
일주일 간 밤새도록 기도를 올렸고
일주일 후에 무사가 돌아오는 배를 바라보니, 붉은 기가 걸려 있는게 아니겠어요

처녀는 그걸 보고
무사가 죽은 줄 알고 상심해서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답니다

그런데 사실
무사는 이무기를 죽이고 흰 기를 걸었는데,
이무기의 목을 벨 때 피가 흰 기에 튀면서
붉게 물든 것이었지요

돌아온 무사는
마을 사람들이 전해 준 안타까운 얘기를 듣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후회하면서
처녀 뒤를 따라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와 무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두 사람을 언덕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지요

시간이 흘러 봄이 되자
두 연인이 잠든 무덤가에
작고 예쁜 붉은 꽃 한송이가 나더니
시들지도 않고 백일동안이나 피었데요

사람들은 이 꽃을 쓰다듬으며
불쌍하게 죽은 연인의 사랑이
꽃으로 다시 태어나
100일 간 그들의 사랑을 밝혀주고 있다면서
그 꽃을 백일홍이라 불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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